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뉴스비전 동서남북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[[1987년]] [[10월 25일]]에 가을 개편으로 신설되었다. 당초에는 [[KBS 1TV|1TV]] 토요일 저녁 7시에 방송되었지만, 1988년 부터 채널을 옮겨 [[KBS 2TV|2TV]]로 채널을 옮겨 일요일 밤 8시 40분 → 9시 40분에 방송되었다. 그러다가 [[1990년]] 가을 개편부터 [[1991년]] [[5월 17일]] 봄 개편으로 [[기동취재 현장]]으로 개편될 때까지 금요일 저녁 8시 5분에 방송되었다. 1987년 민주화 바람에 따라 신설된 프로그램[* 생방송 심야토론도 이 때의 개편으로 신설되어 동시기에 방송을 시작했다.]이지만 [[http://www.joongang.co.kr/news/article/article.asp?ctg=11&Total_ID=2302527|실질적인 신설의도는 정부여당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.]] 즉, 원래는 그 동안 흔히 볼 수 있었던 교양 계몽 프로그램으로 신설되었던 셈이다. 그러나 당초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민주화의 여파로 대선 이후부터는 검열이 풀린 시대상을 타서 시사 고발 프로그램으로서 성격을 강화해나갔으며 사실상 정권비판적인 소재를 다루기 시작한 첫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. 지금 보면 상당히 미숙하게 다룬 면이 없지는 않지만 당시로서는 (민주화 바람을 한창 탔을 때라는 걸 감안해도) 매우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. 그 동안 방송사에서 직접적으로 다루는게 금기시 되었거나 다루더라도 반드시 부정적으로 다뤄야 했던 파업이나 학생운동, 철거민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온정적이거나 중립적으로 다뤘으며 시사 관련한 소재도 상당부분 다루는 등 그 동안의 KBS의 [[땡전뉴스|논조]]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'''상전벽해''', 뉴스비전 동서남북의 전신이라 할수있는 [[추적 60분]]과 비교해도 엄청난 발전을 이록한 셈이었다. 그러다가 1990년을 기점으로 논조가 점차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뉴스비전 동서남북은 그 영향을 덜 받은 편이라서 그 이후에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상세히 다룬 편이었다. 이러한 논조는 당시 권력층이나 KBS 상층부에게 안 좋은 눈으로 비춰지기도 했다. 1988년 5월 15일 방영 예정이던 '서울대 5월제' 편은 김도진 당시 TV본부장 측이 해당 축제의 민중적 관점을 문제삼아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aver?articleId=1988052700289104001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8-05-27&officeId=00028&pageNo=4&printNo=11&publishType=00010|방영을 취소시켰으나]] KBS PD협회 측이 '뉴스비전 관련 청문회 및 토론회'를 열고 간부 등에게 방영을 수 차례 건의하면서 6월 12일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aver?articleId=1988061100209212019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8-06-11&officeId=00020&pageNo=12&printNo=20519&publishType=00020|방영이 성사되었다]]. 7월 22일에는 KBS 측이 서울올림픽 프로 제작을 위한 효율적 인력관리 등을 이유로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aver?articleId=1988072100209216005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8-07-21&officeId=00020&pageNo=16&printNo=20553&publishType=00020|돌연 폐지 결정을 내려]] 일선 PD들 사이에서 논란이 불거지다가, 당사 측은 올림픽이 끝나고 부활시키겠다고 하며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aver?articleId=1988072200209212008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8-07-22&officeId=00020&pageNo=12&printNo=20554&publishType=00020|이를 번복했다]]. 약 3개월 간의 휴식기를 거친 후 10월 9일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aver?articleId=1988100700329212004&editNo=3&printCount=1&publishDate=1988-10-07&officeId=00032&pageNo=12&printNo=13242&publishType=00020|방영을 재개했다]]. 1990년 KBS 사태로 인한 노조의 제작거부 투쟁으로 4월 15일부터 한달여 간 중단된 바 있고, [[1991년]] 봄개편 때 [[기동취재 현장]][* 원래는 "뉴스의 현장"이라는 타이틀로 기획되어있었지만 기자들이 [[http://webcache.googleusercontent.com/search?q=cache:0ukhaDj45pgJ:www.kabs.or.kr/store/board/download.php%3Fid%3DPublishedThesis%26no%3D5%26div%3D1+&cd=6&hl=ko&ct=clnk&gl=kr|"PD가 제작하는 프로그램]]에 왜 뉴스 타이틀이 붙냐"면서 반발하는 바람에 기동취재 현장으로 타이틀이 정해졌다. 다만 실제로는 후의 [[KBS 8 뉴스타임|뉴스투데이]](1999 - 2001), 생방송 시사투나잇(2003 - 2008)과 마찬가지로 기자도 제작에 참여했다.]이라는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으로 개편되었다. 그러나 기동취재 현장은 그 이전의 뉴스비전 동서남북보다 심층성이 약하다는 평[* 뉴스비전 동서남북은 20 여분짜리 아이템 2건을 다루었는데 기동취재 현장은 10분짜리 아이템 3건+날씨를 다루는 방식이었다. 당연히 심층성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.]을 받았고 그 이후에 1년 만에 1TV 일요일 밤 9시 20분으로 시간대를 변경하면서 다시 주간 시사 프로그램으로 변경되다가 1992년 가을개편 때 [[KBS 뉴스 9|KBS 9시 일요현장]]으로 통합되었다. 여하튼 이 때 2TV 시사 프로그램의 맥이 끊어졌다가 [[1994년]] 봄 개편을 맞아 '''[[추적 60분]]'''으로 부활했고, 2019년 [[시사직격]]으로 바뀌었다가 2023년 다시 추적60분으로 환원되어 맥을 잇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